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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노무현’보다는 ‘시민 노무현’

이경희330 2008. 6. 21. 10:57

그동안 민주주의 2.0 사이트 구상은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노무현 전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위한 통로라고 설명합니다. 아닙니다. 이 사이트는 ‘대통령이 말을 하기 위한 사이트’가 아니라 ‘시민들이 말하고 소통하기 위한 사이트’입니다.

 

‘민주주의 2.0’사이트 구상은 ‘시민 노무현’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대통령은 지난해 봄무렵부터 퇴임 후의 역할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젊은 편이기 때문에 ‘대통령 노무현’을 마치고 나면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무언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도 ‘정치인 노무현’의 길을 영 덮어 놓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음 총선에 출마할건지 묻기도 하고 지나는 말로 등을 떠밀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열린우리당이 깃발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 이후 언제부턴가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지 30년, 정치인으로 20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5년.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의 결론은 다시, ‘시민’이었습니다. 영향력있는 ‘원로 정치인’이 되는 쪽보다는 다시 시민으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권력에서 물러나지만 다시 가장 큰 권력, ‘시민’ 속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


“역사발전이라는 것이 대통령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와 이념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흐름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민 노무현’이 시민주권운동을 위해 처음 꺼내든 프로젝트가, 시민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 ‘인프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부터 시스템,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치인이 되고 난 후에도 인명(人名) DB 프로그램인 ‘뉴리더’, ‘노하우’와 같은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해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시민 노무현’이 시민주권운동을 위한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대통령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

 

‘민주주의 2.0’은 이름만 2.0이 아니라 사이트 운영 역시 철저하게 2.0 방식으로 할 방침입니다. 정치적 발언을 내보내고 확산시키는 창구 만들자고 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 운영은 운영진이 최종 책임을 가지고 운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토론을 주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토론 주제를 정하고 진행하는 일, 화면을 구성하고 디자인하고 편집하는 일, 나아가서는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을 개선하는 일 등 모든 것을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주도하도록 할 것입니다. 웹2.0, 집단지성 이런 개념을 적용해 보자는 것입니다.” (2008년 3월24일, ‘민주주의 2.0’ 테스트버전에 올린 글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시민들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함께 검증해 발전시키고, 이를 활용해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기자나 집필자들을 상근인력으로 두는 건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 회원들의 참여만으로 해결해 나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웹사이트 편집과 관리를 위한 기본 인력은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민주주의 2.0’의 편집실 인력도 이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 중에서 의지와 여건이 되는 사람을 뽑아서 하자는 생각입니다.

 

막상 개발작업을 하다보니 손볼 일이 많아 당초 잡았던 오픈 일정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5월23일에야 베타테스트를 시작했고, 예정은 약 한달 정도 잡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부 알파테스트에서는 사이트의 구조와 기능, 특히 토론 구조를 다듬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베타테스트에서는 시스템에 대한 토론 이외에 일반적 이슈와 주제에 대해 다양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베타테스트 프론티어는 <사람사는 세상> 회원 중에서 참여한 100여명 정도. 이번 테스트를 통해, 실제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짚어보고 이를 시스템에 반영한 후에 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민주주의 2.0’에 대해서는 대통령 주변의 가까운 참모들도 아직 걱정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가 중심이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올지, 생산적인 토론이 될지, 기존의 사이트와 달라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기에 구조가 복잡하지는 않을지 등등. ‘민주주의 2.0’ 사이트의 미래에 대해 가장 낙관적인 사람은 역시 대통령입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소통을 통해 시민의식이 발전하고, 시민주권운동, 진보적 시민민주주의의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달 넘게 수십만이 참가하는 촛불집회도 웹2.0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수준 높은 시민들입니다.

 

얼마전 시청앞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의 TV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부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민 개개인이 목소리를 내고 그게 대세를 만들어가는게 정석아닌가요. 우왕좌왕해도 이게 민주주의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