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3

“박정희 먹고 사는 문제 해결못했다”

“70년대 고도성장은 임금착취때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주화를 늦췄을지 몰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았나”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박정희시대에 오히려 임금이 7.8% 포인트 하락했으며,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 때문이고, “1970년대에 임금이 오히려 상승했다”는 주장은 자료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는 지난달 31일자 교수신문을 통해 “진정한 박정희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국보위 특별법’이 공포된 70년대에 임금몫은 7.8% 포인트 감소했으며, 1971년과 1979년을 제외한 나머지 연도에 실질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 상승률보다 낮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들은 생산에 기여한 ..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 - 수출은 누구의 살길이었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명암… 내수 부진·인플레이션·소득 격차 등 부작용은 지금도 계속 1968년 2월 착공해 2년5개월 만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에 세워진 고속도로 준공기념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경부고속도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의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이끈 축은 수출이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출 1위 기업은 반드시 도산” ‘수출만이 살길’이란 구호가 지배하던 그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에 각부 장관, 재계 대표, 은행장 등을 모아놓고 품목별·지역별 수출실적을 하나하나 챙기고 ..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시대 경제의 명과 암

1. 들어가며 1999년 7월 21일 대우그룹이 마침내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정부와 금융권에 4조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 파라다임은 사실상 종언을 고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통해 거대재벌로 성장한 대우그룹이 결국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끝내 좌초하고 만 것은 그러한 사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제 박정희 시대의 경제관이라는 자체가 완전히 종언을 고했음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이른바 “고도성장”이라는 신화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일까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유신 시대의 잔영에서 헤어나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1997년 한국의 금융공황이후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외환위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피폐해..

박정희 고찰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