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자유 그리고 평화!

이경희330 2005. 7. 28. 02:20

 

Nelson (Rohihlahla) Mandela

1918. 7. 18 남아프리카 공화국 트란스케이 움타타~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회장, 최초의 흑인 대통령.

1962년부터 1990년 2월까지 약 27년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남아프리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의 희망이 되어왔다. 만델라는 1999년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이끌었다.

 

넬슨 로이홀라홀라 만델라는 코사어를 쓰는 템부족(族)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포트헤어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으로 제적되었고 전통혼례를 피해 잠시 트란스발 광산의 경찰관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1942년 버트바터스란트대학교에서 법률학위를 취득하고 동료인 올리버 탐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1944년부터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참여했고 이내 흑인해방운동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1948년 이후 집권 국민당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에 대항해온 결과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1956), 1961년 무죄로 풀려났다.

 

이 기간에 부인과 이혼하고 놈자모 위니프레드(위니 만델라)와 재혼했다(이들은 1996년에 이혼했다). 1960년 경찰의 발포로 샤프빌에서 비무장 군중들이 살상된 데 이어 ANC에도 금지령이 내려지자 만델라는 그때까지의 비폭력 노선을 포기하고 대(對) 정부 사보타주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1962년 만델라에게 5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1963년 투옥 중인 만델라와 동료들이 사보타주·반역죄·공모죄로 재차 소추된 이른바 '리보니아 재판'이 열렸다. 경찰은 요하네스버그 교외의 풍광 좋은 리보니아에 있는 움콘토 웨 시즈웨(Umkhonto We Sizwe:'국민의 창'이라는 이름의 ANC 전투조직) 본부를 급습해 막대한 물량의 무기와 장비들을 적발했다. '국민의 창'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던 만델라는 기소내용의 일부를 시인했고, 1964년 6월 11일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1964~82년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로번 섬 교도소에 투옥되었고, 이어 1988년까지는 삼엄한 경비로 악명 높은 폴스무어 교도소에 감금되었는데 결핵 증세가 나타나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동안 남아프리카의 흑인과 아파르트헤이트에 비판적인 국제사회에서 만델라의 투쟁은 하나의 위대한 지향점으로 인식되었고, 마침내 1990년 2월 11일 F. W. 데 클레르크 정부는 그를 석방하기에 이르렀다. 석방된 만델라는 3월 2일 ANC의 부의장에 선출되었고 1991년 7월에는 오랜 동료인 올리버 탐보의 뒤를 이어 의장에 취임했다.

 

인종차별을 불식한 민주헌법의 제정을 위해 데 클레르크 총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평온한 사회로의 이행을 부단히 추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두 사람이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4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다민족 총선거에서 ANC는 승리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일어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했다. 만델라는 또한 흑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교육·경제개발 계획을 도입했다. 1996년 만델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헌법 제정을 지휘했다.

 

1997년 ANC 의장에서 물러났고, 1999년 임기를 마치자 재임하지 않고 대통령에서 물러나 그 해 6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험난한 자유의 길 No Easy Walk to Freedom〉(1965)과 〈나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I Am Prepared to Die〉(제4판, 1979)에 그의 글과 연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1994년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 Long Walk to Freedom〉을 출판했다.

'앨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7 놀이!  (0) 2005.07.28
울타리  (0) 2005.07.28
제주  (0) 2005.07.28
헤이리  (0) 2005.07.28
나래 콩에서  (0) 200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