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경기 여주군 대신면 한강살리기 사업 3공구 여주1지구 이포보 현장.
정오 무렵 잠깐 비가 멈췄지만 새벽까지 계속 내린 비와 상류에 있는 충주댐 방류로 이포보 수문은 모두 개방돼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지난달 22일부터 이어진 장마비로 800㎜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800㎜면 연강수량의 70%에 가까운 비에요. 하늘이 구멍이 뚫렸나 싶더라니까요"
전날까지 비상근무로 밤샘근무를 했던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소속 홍수통제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포보 일대 당남 1.2리, 초연리 등의 마을에는 고추.우엉.마.벼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수백명 모여살고 있다.
이 일대는 작년까지만 해도 100㎜ 안팎의 비만 와도 논밭이 통째로 물에 잠기곤 했다. 저지대로 물이 빠지지 않는데다 농경지에 물을 대는 곡수천의 역류도 잦았기 때문이다.
여주군청 공무원 정진태(43)씨는 "곡수천의 폭이 80m 안팎이고 높이도 7~8m 밖에 안돼 본류 수위가 높아지면 본류 홍수방지를 위해 수문을 닫을수 밖에 없었다"며 "165만㎡에 달하는 마을 전체가 저수지로 변하곤 했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달랐다. 남한강 본류와 지천인 곡수천 사이에 198만㎡에 달하는 거대한 저류지를 만들어 곡수천 물을 저류지로 뺀데다 당남리 일대 마을 농경지 물도 저류지로 바로 뺄수 있도록 해 마을에 물이 차지 않은 것이다.
당남1리 주민 신경해(54.여)씨는 "작년 추석때만 해도 갑자기 예보없이 폭우가 쏟아져 집앞에 있는 밭은 물론 방문 앞까지 물이 차 꼼짝 없이 수해를 당했다"며 "그간 4대강 사업으로 홍수피해가 없어진다해도 반신반의했는데 효과가 진짜 나타나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저류지 자체 용량이 30년 빈도의 홍수가 와도 감당할수 있는 1530만t 용량 규모여서 이 일대 홍수 걱정은 크게 덜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유례없는 집중호우가 이어지고 있지만 침수 피해는 예년만 못하다. 정부는 4대강사업이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충북 충주에는 연 강수량의 67%에 달하는 812mm가 쏟아졌다. 부여(735mm), 군산(744mm) 등도 700mm가 넘는 비가 내렸고 원주, 양평, 천안, 수원 등은 연 강수량의 절반이 10여일만에 쏟아져 `물폭탄`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침수피해 보고는 크게 줄었다.
소방방재청은 아예 4대강 사업의 준설효과로 하천 수위가 낮아져 침수피해가 크게 줄었다는 보고서까지 발표했다.
4대강 살리기 공사구간 중 가장 많은 준설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구간도 침수피해를 피해갔다.
홍수피해 우려가 제기된 17~18공구 함안보와 19~20공구 합천보 공사현장에는 공도교 설치 자재인 강교박스가 일부 침수되긴 했지만 예년과 같이 제방 붕괴로 인한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함안보와 가장 인접한 창녕 길곡면 이장협의회 김종택(56) 회장은 "과거에 이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을 때 강변 근처인 남지체육공원이 완전히 물에 잠겼지만 지금은 강변 쪽 일부만 물에 잠겼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낙동강 하상이 2.4m 낮아진 것은 100년에 한번 올 수 있는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이 200년에 한번 올 수 있는 수준으로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보다 비가 적게 내렸던 영산강 수계도 침수피해가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강 유역은 지역별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4대강 선도사업지구인 연기군 행복지구와 공주시, 논산시, 청양군 등에서는 농가의 피해가 커진 반면 부여군과 서천군 등 하류지역은 준설작업으로 농경지 침수 피해가 크게 줄었고 침수 기간도 훨씬 짧아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공주시의 경우 인위적으로 물길을 돌린 월송천의 둔치가 완전히 훼손됐고 합수부마저 무너졌다. 4대강 사업 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던 유구천 합수부 보는 세굴돼 주저앉았고 호안 블록이 무너져 둔치 붕괴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인면 만수리 둔치는 장마가 시작된 지난 6월말에 유실된 채 방치돼 향후 지천 수문까지 붕괴 위험을 안고 있다.
연기군 행복지구는 무리한 공기 단축으로 인한 부실공사로 첫마을 아파트 앞 금남보에서 전월산 아래까지 1공구와 전월산 아래부터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강리 일원 2공구는 산책로 일부가 물에 잠기면서 지반이 내려앉았다. 2공구 현장도 합강정 공원 주변은 금강으로 접근하는 산책로와 생태관찰장이 물에 잠겨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논산시 성동면 주민 여모씨(64)는 "1987년 충남 대홍수 이후 단 한 번도 이런 피해가 없었는데 천재가 아닌 인재인 만큼 정학환 원인규명을 위한 대책반을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흥모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준설로 인한 하상 취약으로 물길이 바뀌고 있어 역행침식, 재퇴적 등 물이 빠지면 피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여군은 최고 강우량 566mm를 기록한 집중호우로 공공시설 50곳, 농경지 897㏊, 멜론·토마토·수박 등 시설하우스 1158동이 침수됐지만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부여군 관계자는 "과거에는 200-300㎜의 강우량에도 금강변 대부분 농경지와 하천변 시설하우스가 상습 침수됐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4대강사업으로 하천위 낮아져 홍수피해 뚝
= 4대강사업은 강 바닥의 흙을 걷어내는 하천 정비사업으로 하천 살리기가 목적이다. 준설로 바닥에 쌓인 침전물이 사라지면서 하천 수위가 낮아져 홍수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7일 현재 15t 트럭 2860만대 분량의 4억 3000만㎥의 퇴적토가 4대강 유역에서 준설됐다. 금강(99.9%), 한강(97%), 낙동강(93%), 영산강(89%) 등의 준설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전체 준설 목표량의 94%가 이뤄졌다.
소방방재청 조사 결과 낙동강 수계인 경북 상주 지역에서 수위가 3.78m 낮아지는 등 비슷한 규모의 예전 폭우 때보다 수해 위험도가 크게 줄었다.
한강 수계인 경기 여주군 일대 남한강 수위는 2.54m 낮아졌고 금강 수계인 충남 연기군 금남보 상류 수위가 3.36m 떨어졌다. 영산강 역시 나주 지역 수위가 2.13m 낮아졌다.
이때문에 비 피해도 줄었다. 조사에 따르면 2004년에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80∼334mm의 집중호우로 2041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올해는 6월 22일부터 7월 3일까지 내린 129∼617mm의 폭우로 84억 원(잠정 집계)의 피해만 났다. 1999년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는 95∼633mm의 비가 내렸을 때 1조49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에 비하면 0.8% 수준에 불과하다.
김철문 4대강추진본부 사업지원국장은 "일부 지류지천에 갑자기 집중호우가 내리는 경우 발생하는 침수피해는 어쩔 수 없지만 4대강 본류사업의 영향권에 있는 곳은 피해가 전혀 없다"며 "4대강사업의 준설효과로 침수피해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소방방재청 조사결과에 대해 시간당 강수량, 강수 패턴의 변화 등을 무시한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가장 피해가 컸을 때와 홍수피해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오류에 빠지기 쉽고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았는데 피해규모를 집계한는건 어불성설이다"며 "4대강사업 홍보를 위한 의도로밖에 볼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4대강 사업이 아닌 별도로 진행돼온 재해예방 사업이 피해를 줄이는 데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2008년에 2255억원, 2009년 이후에는 매년 5000억원 이상을 재해예방 사업에 투자했다.
이철재 국장은 "4대강 본류 정비로 인해 지류.지천의 유속이 빨라져 제방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아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지류지천 정비가 시작되면 그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신문 [서울 = 임성현 기자 / 여주 = 이지용 기자 / 대전 = 조한필 기자 / 광주 = 박진주 기자 / 창원 = 최승균 기자 / 대구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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