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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객 서영석이 바라본 4년뒤의 박근혜는 대한민국 대통령 ‘따논’ 당상?

이경희330 2009. 3. 2. 22:21

野까지 아우른 박근혜의 위력...4년뒤는 ‘따논’ 당상?
미디어법 처리, 여야 극적 합의 배경에 숨은 함의

여야가 100일의 '숙려기간'을 가진 뒤 미디어관련법의 국회표결처리에 2일전격 합의한 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정치적 함의가 숨어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면 민주당의 정치적 패배다. 100일이 지난다고 172석의 공룡여당이란 실력이 어디 가지 않을 것은 뻔하다. 사망선고일을 100일 늦춘 사형수에 비견될까.

보수언론들의 막강한 지원을 엎은 한나라당내 강경파들이 김형오 국회의장의 탄핵도 불사한다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압박작전을 구사하는 등 이른바 한나라당의 우회전략에 사실상 굴복한 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4년전 한나라당 박근혜 당시 대표를 비롯한 그때 야당의원들이 사학법 파동 당시 거리로 뛰쳐나갈 당시에 보였던 그 결의에 찬 '독기(毒氣)'를 보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민주당은 내심 두가지 계산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100일 동안 논의한다 해도 신문사가 방송사의 일정한 지분을 획득할 수 있게 허용해주는 조항 등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100일 뒤 표결로 나서기 전 이 문제 등 몇가지 쟁점을 고리로, 여전히 강력투쟁할 명분은 잃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100일 뒤 무기력하게 표결로 미디어 관련 독소조항을 통과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란 다소 '공허한' 자신감을 내심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 100일 사이에 중요한 정치일정으로 4월 재보선이 있다는 계산을 했음직하다. 사실 재보선에서 야당이 선전하고 한나라당이 패배할 경우 미디어 관련법을 강하게 몰아부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계산을 한 것이라면 다소 아전인수적인 착오라 아니 할 수 없다. 100일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민주당이 반대를 한다면 한나라당에게도 강행통과시킬 명분이 축적된다는 점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은 과거 정권이나 집권당과 달리 '도덕성'에는 별 관심도 없고, 실제로 날치기 처리라도 할수만 있다면 하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영남과 보수세력의 '묻지마 지지'가 바탕에 깔려 있다.

같은 맥락에서 4월 재보선에서도 낮은 관심도로 인해 지역대결이란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아무리 한나라당이 여론의 질타를 받더라도 선거에서 그렇게 참패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작년 촛불집회의 그 막강한 파도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지원하는 공정택 씨가 서울시교육감에 무난히 당선된 것이 그것을 웅변한다. 낮은 참여 속에서는 영남의 '묻지마 지지'가 예외없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 왔다.

민주당이 이처럼 무기력한 근본 이유는 사실 민주당의 현 주류가 과거 정권이나 과거 핵심세력이 취해왔던 진보적 개혁노선이 대선 패배의 원인이란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 울트라 라이트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진보적인 노선을 표명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들이 부인하고 있는 과거 정권의 노선을 답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실제 존재한다. 언론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만 이른바 조중동 보수신문을 애호하는게 아니라 현재 민주당의 지도부도 그 막강한 조중동의 위력에 숨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정도의 계산은 사실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극한대결 불사 운운했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한마디에 곧바로 납작 엎드리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2일 오전만 하더라도 김형오 국회의장을 탄핵한다는 그야말로 사석에서나 할 '우스개소리'가 의원총회장에서 난무할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였다. 민주당 역시 미디어 관련법의 처리 시기를 못박는 문제에 대해서까지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박 전 대표의 한마디로 끝장을 봤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국회 본청 '로텐더 홀'을 방문해, 미디어관련법안중 쟁점이 되고 있는 신문법과 방송법 등을 미루는 내용이 핵심인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기를 못박지 않았다는 것인데, 시기를 못박는 것은 야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정도면 야당이 합의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밝혔었다.

박 전 대표의 이같은 언급은 여야 모두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즉 '김형오 중재안'은 '민주당 안'이라며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내 강경파들과, 처리시기문제로 미적거리는 민주당에게 모두 양보와 결단을 촉구하는 발언이었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는 이른바 한나라당내 '친이(李) 강경파'도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항복선언을 했다. 민주당 역시 시기문제를 과감하게 양보해 박 전 대표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로써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얘기했던대로 이 나라의 진정한 야당은 박 전 대표만이 유일하다는 점을 입증시켰다. 민주당의 배후에도 박 전 대표가 있는 격이 됐고, 한나라당 내부도 친이니 뭐니 하지만 역시 '대주주는 박근혜'란 사실을 유감없이 입증한 셈이다.

이런 형세가 계속된다면, 과거와 달리 차기 대권은 박근혜 전 대표로 자동 낙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가능해질 것 같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막판 헛손질로 두차례 물을 먹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은 '진보세력 10년 집권'에 대한 일종의 '염증'과 대안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궈낸 낙승(樂勝)이었지만 고비가 정말 많이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경우 집권 2년차인 이명박 대통령의 서슬이 여전히 살아있는 시점에서 이토록 한마디에 여야가 '차렷자세'를 취하는 형국이라면, 4년후 박근혜를 대신할 카드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개혁세력 역시 대항마를 키워 박 전 대표를 넘어서는 게 요원하지 않느냐는 전망도 설득력을 더할지 모르겠다. 야당으로서는 어쩌면 이러다간 '4년후'가 아니라 '9년후'를 기약해야 할 상황으로 몰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영석 정치전문기자